반응형

1





물리학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아내겠다는 인간의 원대한 꿈을 담은 학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포츠는 물리학의 오랜 친구이다. 사실 골프공의 표면이나 야구공의 실밥 하나에도 깊은 물리학이 들어 있다. 또한 박주영의 프리킥, 이승엽의 홈런, 박태환의 수영 등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비록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얼마나 물리학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이번 겨울에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때에 비해 더 큰 듯하다. 그다지 좋지 않은 경제상황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 이외에도 얼마 전에 상영했던 스키 점프를 소재로 한 영화 덕분에 동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특히 이번에 열릴 동계올림픽이 주목을 받는 것은 피겨 스케이팅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남의 나라 잔치로만 생각했던 피겨 스케이팅에 김연아 선수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등장했으니 말이다.

 

동계올림픽의 꽃이라고도 부르는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와 예술이 결합하여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종목인데, 물리학자들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 발견한다. 선수가 얼음 위에서 만들어내는 몸짓 하나, 점프 하나에 물리 이론들이 생생하게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가지 간단한 것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2010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기대되고 있는 자랑스런 김연아 선수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는, 얼음의 표면이 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우선 스케이팅의 존재 근거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얼음은 미끄럽다. 만약 미끄럽지 않았다면 스케이팅이라는 운동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미끄러울까? 마루에 물이 있으면 미끄럽듯이 아마 얼음 표면에도 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왜 얼음 표면에 물이 있는 것일까?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여전히 얼음 표면은 미끄럽다.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는 최근에야 제대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대략 세 가지 정도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사람 몸무게가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에 집중되어 얼음에 강한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음은 물보다 부피가 크기 때문에 압력이 커지면 부피를 줄이기 위해 물로 변한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사람 몸무게 등을 넣어 구체적인 계산을 해보면 압력에 의한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옳은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한 가지 설명은 얼음을 지칠 때 스케이트 날과 얼음 사이의 마찰에 의해 열에너지가 발생하여 얼음 표면이 순간적으로 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실험과 구체적 계산을 통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설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에는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하지만 그냥 서 있으면 날과 얼음 사이에 마찰이 발생할 리 없기 때문이다. 얼음은 그냥 보통 신발을 신고 서있기만 해도 미끄럽지 않은가?

 

마지막 설명은 본래 얼음 표면이 얇게 물로 덮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얼음 표면의 물 분자들이 얼음 내부의 물 분자와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얼음 내부에서는 물 분자들이 각 방향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표면의 물 분자는 위쪽으로는 다른 분자와 연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음이 되지 못하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 설명은 1850년대에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맨 처음 제안했다가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에 정밀한 실험과 이론 계산 등을 통해 옳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지금도 매우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얼음이 미끄럽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제야 비로소 과학적으로 올바른 설명이 가능해지고 있으니 젊은 과학도들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좋을 듯하다.

 

영하 20도에서 얼음의 표면을 수퍼 컴퓨터로 계산한 그림. 위쪽이 얼음 표면이다. 얼음 내부의 물 분자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고체인 얼음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표면의 물 분자는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액체상태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출처: T.Ikeda-Fukazawa. K.Kawamura. Journal of Chemical Physics 120(2004)1395.>

 

 

피겨 스케이팅의 스핀은 각운동량 보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 얼음 위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과 놀라운 기술의 하모니, 피겨 스케이팅 속의 물리학에 대해 얘기해보자.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요소에는 스핀점프스파이럴스텝 등이 있는데 먼저 스핀에 대해 알아보자. 스핀에서 가장 기본은 일자로 서서 회전하는 것인데 스케이터가 처음에는 팔을 벌리고 천천히 회전을 하다가 팔을 안쪽으로 모으면서, 회전 속도가 매우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우주의 모든 방향이 동등하다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각운동량 보존법칙의 결과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결과만 이야기하자.

 

대강 말하여 각운동량은 회전 운동이 얼마나 강하게 일어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회전 속도가 클수록 각운동량이 크고 또한 같은 회전 속도라면 회전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각운동량이 크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으면 시소를 떠올려보자. 같은 몸무게라면 시소의 고정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사람이 회전을 더 잘 시킨다. 지렛대도 마찬가지 원리다.) 따라서 팔을 벌려 큰 각운동량을 가지고 회전을 시작하다가 팔을 안으로 모으면 같은 각운동량을 유지하기 위해 저절로 회전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회전하는 선수가 팔을 안으로 모으는 것은 회전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함이다.

 

 

점프의 회전수는 체공 시간과 회전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두 번째로 물리 법칙을 찾아볼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은 점프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무엇보다도 점프일 것이다. 점프는 도약지점까지의 접근방법이나 도약할 때 스케이트 날을 사용하는 방법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구분된다. 각 점프는 대략 100년 전에 분화된 것으로서 그 후 5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며 3회전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새 3회전 점프가 모든 선수에게 필수인 것을 보면 그 사이에 점프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발전 덕택에 현재 완성된 형태의 점프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수행방법이 매우 효율적으로 되어 있다.

 

공중에서의 회전수는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체공 시간과 회전 속도. 물론 체공 시간이 길수록, 그리고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회전수가 늘어난다. 체공 시간은 스케이터에 관계없이 점프의 최고 높이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최고 높이는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떠나는 순간 선수의 무게중심이 수직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가느냐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면 그 뒤에는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우는자유낙하 공식에 의해 최고 높이와 체공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다. (농구나 배구 등 다른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수의 체공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 선수가 특수한 능력이 있어서 같은 높이로 뛰어오르고도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높이 점프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똑같은 중력가속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일단 체공 시간이 정해지면 그 다음에는 회전 속도에 따라서 공중에서의 회전수가 결정된다. 그런데 회전 속도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각운동량이 핵심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몸이 얼음을 떠나기 직전에 팔다리를 펴서 회전을 시작하여 각운동량을 최대로 했다가 도약 직후 팔다리를 안으로 모아 몸을 일자로 만들면 회전이 빨라지게 된다. 만약 공중에서 원하는 회전수를 다 채웠다면 다시 팔다리를 펴서 회전을 거의 멈추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착지할 때 스케이터가 팔과 다리를 다시 벌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점프를 할 때 팔을 모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회전하는 동안에는 팔에 원심력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이런 원심력이 중력의 네 배까지 커지기도 한다.

 

피겨스케이팅의 꽃, 점프

 

세계 정상급의 남자 선수들은 3회전을 넘어 4회전 점프를 하기도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3회전과 4회전 (혹은 2회전 반과 3회전 반) 점프를 비교했을 때, 4회전이라고 해서 점프의 높이가 크게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미 3회전 점프에서 한계에 가깝게 높이 점프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4회전 점프에서도 체공 시간은 비슷하다. 결국 1회전을 더 하려면 회전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팔을 좀 더 빨리 안쪽으로 모으고 몸을 더 가늘게 일자로 만들어야 한다. 스케이터들은 비록 물리학에 정통하진 못하지만 경험으로 이런 물리 이론을 터득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의 점프는 웬만한 남자 선수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질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점프가 높아 회전에 여유가 있으므로 점프 전에 미리 돌거나 착지 후 모자란 회전을 채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몸이 공중에 충분히 올라간 뒤 본격적으로 회전을 시작하는 지연 점프(delayed jump)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각운동량 보존법칙에 의하면 지연 점프라고 해서 정말 회전을 멈췄다가 공중에서부터 회전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팔다리를 모으는 시간을 늦춰서 점프 직후에는 회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것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의 놀라운 기술은 스케이팅 속도와 관련이 깊다

또한 김연아 선수의 점프는 다른 선수에 비해 비거리, 즉 도약지점에서 착지까지의 이동 거리가 길다. 이것은 스케이팅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케이팅 속도가 빠르면 점프할 때 큰 각운동량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따라서 여유 있는 회전수와 긴 비거리 등으로 높은 가산점을 얻는 김연아 선수의 점프는 결국 전반적인 스케이팅 속도가 빠르다는 것과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처럼 피겨 스케이팅의 여러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학에 의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체적인 연기의 수준을 높이게 된다.

 

이 밖에도 점프 종류에 따라 회전을 일으키는 방법이나 회전축, 스파이럴, 각종 스핀과 스텝 등에 물리학의 여러 원리들이 매우 아름답게 구현되어 있다. 앞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볼 때면 독자 여러분도 한 번쯤 숨어있는 물리학을 찾아보기 바란다.

 

 

 

 김찬주 /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시립대와 고등과학원,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연구하였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발행일  
2009.11.20

반응형

'물리(Physics) > 일반물리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위변환 계산하기  (0) 2013.03.13
성장률  (0) 2012.11.02
일과 동력  (0) 2012.11.02
{ 토크 & 모멘트 } ≠ (질량)관성모멘트  (0) 2012.11.02
적도,위도,경도  (0) 2012.11.02

+ Recent posts